
계좌 변동성을 보며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경험 이후 BTS 모의투자 팀원들과 함께 매크로 브리핑을 정밀하게 복기하며, 지금 AI 투자 판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짚어봤습니다.
칩플레이션, 달콤한 실적 뒤에 숨은 복병
레노버와 델의 실적 서프라이즈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처음엔 단순히 PC 수요가 살아난 덕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뜯어보니 달랐습니다. 핵심은 인프라 설루션 사업부였습니다. 제조업이나 소비재 기업들이 AI 인프라를 자체 구축하기 어렵다 보니, 레노버 같은 기업이 하드웨어부터 클라우드 인프라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공급하는 모델이 강한 모멘텀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걸 AX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AX 전환이란 AI Transformation의 줄임말로, 기존 산업 전반에 AI를 적용해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바꾸는 흐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흐름 뒤에는 불편한 복병이 있습니다. 바로 칩플레이션(Chipflation)입니다. 칩플레이션이란 반도체 가격 급등이 소비자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는 현상으로, PC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레노버와 델이 지금은 디바이스 가격을 올려가며 이익을 방어하고 있지만, 이 비용이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에서 매크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 발표되는 미국 PCE 지표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PCE(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로, 현재 레벨보다 방향성이 하락세를 보이는지가 통화정책 운신 폭을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미·이란 휴전 소식이 에너지 가격 하락 기대를 일부 높이고 있어, 이 PCE 수치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칩플레이션 국면에서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레노버·델의 인프라 솔루션 실적 모멘텀이 AX 전환 가속화를 확인해 주는 선행 신호
- 반도체 가격 상승이 PCE 지표에 반영될 경우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가능성
- 마벨 테크놀로지(27일 실적 발표)의 광자 AI 및 인프라 설루션 수주 잔고가 하드웨어 공급망 건재 여부의 분수령
AX 전환의 수혜자, 누가 진짜 돈을 버는가
마벨 테크놀로지 실적을 앞두고 팀원들과 이 종목을 깊이 파본 적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목은 밸류에이션 부담이 화제가 되는 시점이 오히려 매수 타이밍 논의를 시작할 때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벨은 지난해 12월 광자 AI 기업 셀레스트리를 인수하며 광 인터커넥트 역량을 강화했는데, 이는 엔비디아 중심의 GPU 생태계가 포화되면서 전력 효율이 높은 광자 기반 칩으로 데이터센터 구조를 재편하려는 빅테크의 수요와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광자 AI란 빛(광자)을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로, 기존 전기 신호 방식보다 전력 소비가 낮고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빠른 차세대 반도체 아키텍처를 의미합니다. 루멘텀, 코이어런트, 나비타스 세미컨덕터 같은 종목들이 같은 테마로 묶이는 이유가 바로 이 전성비, 즉 전력 대비 성능 효율 경쟁에 있습니다.
이 흐름을 보면 빅테크의 자본 지출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메타의 하이페리움 데이터센터처럼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쓸 것인지가 지금 투자의 핵심 질문이고, 그 해답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빅테크의 Capex를 가장 직접적으로 흡수하고 있습니다. Capex란 기업이 미래 수익을 위해 설비, 장비, 인프라에 투자하는 자본 지출을 뜻합니다. 현재 글로벌 빅테크의 AI 관련 Capex 규모는 2024년 기준 상위 4개사 합산 약 2,000억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추정됩니다(출처: Bloomberg Intelligence).
반면 소프트웨어 섹터는 다른 논리가 작동합니다. AI 디스럽션 우려로 밸류에이션이 억눌려 있는 세일즈포스 같은 기업들이 오히려 저점 매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의견에 절반은 동의하지만, AI가 실제로 기존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대체하는 속도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장 리밸런싱, 달콤한 서사에 속지 않으려면
미국 증시로 자금을 옮겨야 하느냐는 질문을 팀원들과도 꽤 오래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이 에너지 수출국이면서 서비스업 중심 선진국이라는 구조적 강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유가가 올라도 에너지 수출로 상쇄하고, 서비스업 중심이라 제조업 기반 국가보다 원자재 인플레이션 충격을 덜 받는 펀더멘탈은 매크로 기압계로 볼 때 분명히 유리합니다. 일본, 대만, 한국처럼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미장으로의 무조건적인 쏠림 서사는 두 가지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째는 환율 리스크입니다. 한·미 금리 차가 유지되는 구간에서 원화 약세가 고착화되면 달러 자산 매입 자체의 비용이 높아지고, 향후 환차손이라는 복병이 수익률을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국내 자산의 저평가 기회비용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빅테크의 비용 효율화 압력에 알파 수익이 제약된다는 진단은 맞지만, 그게 곧 완전한 외면의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익이 올라가는 만큼 주가가 따라오는 구간에서의 수익 기회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코스피 외국인 순매수 동향과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질 수주 잔고 데이터를 교차 검증하는 작업을 BTS 팀원들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외국인의 코스피 누적 순매도 규모는 수조 원대를 기록하며 수급 압박이 지속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이 숫자를 달콤한 미장 서사와 함께 놓고 봐야 균형 잡힌 판단이 가능합니다.
두 아들을 키우며 부원장 직까지 병행하는 삶에서 매일 19층 계단을 정직하게 오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체력도, 투자도 소음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루틴에서 나온다는 것을 몸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 빅테크와 밸류 메리트가 살아있는 소프트웨어 섹터를 중심으로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되, 국내 반도체의 실질 수주 잔고와 글로벌 통화 공급량(M2)을 차가운 숫자로 계속 교차 검증하겠다는 것이 지금 제 포트폴리오 원칙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