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의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핵무기도, 동맹국의 이탈도 아닌 '주가 하락'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센터에서 일하면서 권위 있는 척하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면 슬그머니 원칙을 꺾는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는데, 트럼프의 최근 행보가 그 패턴과 너무 닮아 있어 글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TACO 거래란 무엇인가
2025년 이후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TACO 거래'라는 표현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TACO란 'Trump Always Chickens Out'의 약자로, 쉽게 말해 트럼프는 강경한 발언으로 판을 키우다가 시장이 흔들리면 결국 물러선다는 패턴을 뜻합니다. 투자자들이 이 패턴에 이름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장 전략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이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피식 웃었습니다. 하지만 웃음이 가시고 나니 씁쓸함이 남더군요. 한 국가 지도자의 의사결정 패턴이 금융 파생 전략의 소재가 됐다는 것은, 그 예측 가능성이 이미 시장 참여자들에게 간파당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TACO 거래가 반복적으로 확인된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25년 4월 전 세계 관세 부과 발표 → 시장 급락 → 입장 완화
- 2026년 1월 그린란드 군사 침공 위협 재강조 → S&P 500 지수 1조 2천억 달러 증발 → 협상 틀 발표로 수습
- 2026년 이란 전쟁 개시 →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 폭등 → 이란에 유리한 조건으로 사실상 후퇴
이 흐름을 보면 '전략적 강경함'이 아니라 '시장 반응에 따른 즉흥적 철회'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바꿔놓은 것
이번 이란 사태에서 결정적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봉쇄였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전략적 해상 통로로,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21%가 이 길목을 통과합니다(출처: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이 해협이 막히는 순간 국제 에너지 가격은 즉각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 개시 전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란은 예상을 깨고 봉쇄를 단행했고, 유가는 기록적으로 치솟았습니다. 비료와 석유화학 제품의 공급망 위기까지 겹치면서 시장은 연일 하락했습니다. 트럼프가 "이란 문명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한 바로 다음 날, 갑자기 "이란이 재건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글을 올린 것은 그 압박의 결과였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직접 그 뉴스를 보면서 예상 밖이었던 건, 40일 만에 입장이 그렇게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란 정권을 "미치광이들의 사악한 집단"이라고 규정했던 사람이, 불과 며칠 뒤 같은 정권과 '해협 통행료 공동 사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니까요.
시장이라는 거울 앞에 선 리더
트럼프가 S&P 500 지수나 다우존스 지수를 자신의 성공 지표로 공개적으로 언급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두 지수는 각각 미국 상위 500개 기업과 30개 우량 기업의 주가 흐름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주식 시장 지수로, 미국 경제 전반의 건강을 가늠하는 척도로 쓰입니다. 트럼프 본인이 이 지수들을 '자신의 성적표'처럼 여겨온 만큼, 지수가 흔들리면 자존심에 직격탄이 되는 구조입니다.
심리 센터에서 일하면서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외부 평가 지표에 자신의 자존감을 과도하게 연동시킨 사람은, 그 지표가 흔들릴 때 방어적으로 행동하거나 급격히 입장을 바꾸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외재적 자기조절(Extrinsic Self-Regulation)이라고 부릅니다. 내면의 기준이 아닌 외부 반응에 따라 자신을 조절하는 패턴인데,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잃습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나 글로벌 금융 시장이라는 변수는 어떤 대통령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시장을 '반드시 내 편이어야 할 지표'로 여기는 순간, 시장은 가장 냉혹한 재판관이 됩니다(출처: Federal Reserve).
일관성 없는 권위자가 만드는 불안
발달심리 현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상황은 부모가 무섭거나 엄격할 때가 아니라, 예측이 불가능할 때입니다. 오늘은 "절대 게임 금지"라고 했다가 아이들이 울면 "그건 전략이었어"라며 철회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규칙을 믿지 않습니다. 규칙 대신 '부모의 현재 기분'을 읽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트럼프가 나토 동맹국과 협의도 없이 이란 전쟁을 선포했을 때, 그 조직 내부에서 겪었을 혼란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협의 없이 내려진 결정, 그리고 시장 압박 앞에 급격히 철회되는 방향 전환. 이것이 반복되면 동맹국도 참모도 더 이상 그 지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른바 신뢰 자산(Trust Capital)의 증발입니다. 신뢰 자산이란 리더가 일관된 말과 행동을 통해 쌓아온 신용의 총량으로,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립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장바구니를 들 때마다 체감합니다. 유가가 오르면 물류비가 오르고, 물류비가 오르면 식품 가격이 따라 오릅니다. 이번 이란 사태로 인한 유가 폭등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이유입니다. 월가의 비명에는 즉각 반응하면서 서민들의 장바구니 고통에는 둔감한 구조, 이 점이 저는 가장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강한 리더십은 외부 지표가 흔들릴 때도 원칙을 지키는 데서 나옵니다. 시장이든 아이들이든, 예측 가능한 일관성 앞에서만 진짜 신뢰가 쌓입니다. 트럼프의 TACO 패턴이 반복될수록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전략이 아닌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 번쯤 지금 내 생활에 이 불확실성이 어떻게 닿아 있는지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또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