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정말 '쉬는 것'일까요? 센터를 운영하다 보면, 활동을 멈춘 순간 급격히 무너지는 분들을 심심찮게 봅니다. 일본의 초고령 사회 대응 방식을 들여다보고 나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능력과 의욕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 그것이 개인의 노후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확신이 생겼거든요.
스키마바이트, 틈새 시간으로 사회와 연결되다
일본에서는 최근 스키마바이트라는 초단기 근무 형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스키마바이트란 하루 2~3시간 단위의 짧은 시간 동안만 일하는 아르바이트 형태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원하는 날짜와 장소를 골라 즉시 지원할 수 있습니다. QR코드로 출근 확인을 하고, 일이 끝나면 그날 바로 급여가 지급되는 구조입니다.
제가 특히 눈길이 갔던 것은, 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층이 청년이 아니라 60대 이상 시니어라는 점이었습니다. 업계 1위 플랫폼인 타이미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60세 이상 이용자는 약 31만 명, 65세 이상은 약 11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연금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도 여전히 사회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신호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제 센터에 오시는 보호자분들의 얼굴이 겹쳤습니다. 자녀 양육이 끝난 후 갑자기 찾아오는 무력감, 퇴직 후 집에만 있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거든요. 몸을 움직이고 낯선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뇌가 활성화되고 삶의 리듬이 살아납니다. 스키마바이트는 그런 의미에서, 돈벌이 이전에 '사람을 살리는 시스템'에 가깝다고 봅니다.
스키마바이트가 시니어에게 주는 핵심 가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출퇴근 시간과 장소를 본인이 직접 선택 가능
- 일당 즉시 지급으로 심리적 부담 없이 시작 가능
- 취미·건강 관리와 병행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
- 사회 연결감 유지로 정신건강 보호 효과
스팟워크가 기업 인력난을 푸는 방식
스팟워크란 필요한 시간대에 즉시 인력을 투입하는 일용직 노동 방식을 말합니다. 일반 단기 아르바이트와 달리, 사전 면접이나 수습 기간 없이 앱 등록만으로 당일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성수기나 이벤트 시즌처럼 인력이 갑자기 필요한 시점에 정규직 채용 없이도 즉각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센터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동 심리 상담이나 검사는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에 수요가 몰립니다. 그런데 그 시간만을 위해 정규 인력을 상시 고용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만약 한국에도 스팟워크 방식의 전문직 매칭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저처럼 소규모 기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일본의 노동력 부족은 이미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약 30%에 달하는 상황에서(출처: 일본 총무성 통계국), 기업들은 젊은 층 확보만으로는 현장을 돌릴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스팟워크는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든 해결책입니다. 고령 인력의 경험과 성실함을 짧은 시간 단위로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노동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구조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히 '나이 든 분들이 용돈 벌이를 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노동력 설계 문제였던 겁니다.
능력중심고용, 나이를 지우는 인사 시스템
스팟워크 이상으로 저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일부 일본 기업들이 도입한 능력중심고용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능력중심고용이란, 연령·성별·경력 단절과 무관하게 직무 수행 능력과 의욕만을 기준으로 채용하고 승진을 결정하는 인사 제도를 말합니다.
한 사례로, GPTW(Great Place to Work) 일본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에 오른 기업은 잡 포스팅(Job Posting)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잡 포스팅이란 사내에서 빈 직위가 생겼을 때 나이·직급·부서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는 내부 공모 제도입니다. 59세 직원이 동일 그레이드의 20대 동료와 같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60대 여성 직원이 관리직 승진에 도전하는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워킹맘으로서 이 대목을 읽을 때 솔직히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결혼하면 그만둬야 한다, 아이 생기면 그만둔다"는 말이 당연처럼 통용되던 직장 문화에서 버텨온 시간이 있으니까요. 능력과 의욕만 있으면 나이도, 성별도, 출산 경험도 장벽이 되지 않는 시스템은 특정 세대를 위한 배려가 아닙니다. 그건 모든 노동자에게 공정한 경쟁의 판을 깔아주는 일입니다.
시니어 전문직 채용 전문 기업의 경우, 건축시공관리사 자격증을 보유한 73세 남성을 현장에 매칭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연수입 350만 엔 전후로, 10년 전만 해도 60대 채용을 꺼리던 기업이 5,000~6,000곳으로 늘어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나이가 아니라 검증된 전문성이 취업 경쟁력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겁니다.
한국 노동시장이 배워야 할 것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요? 한국은 법적으로 65세까지 고용을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60세 이후 재고용 시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임금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제도로, 고용 안정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 시니어의 노동 의욕을 꺾는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반면 일본의 일부 기업들은 재고용 후에도 성과와 그레이드에 따라 임금을 동일하게 유지합니다. "60세를 넘었으니 생산성이 낮아진다"는 전제 자체를 거부하는 겁니다. 실제로 해당 기업들은 시니어 인력 활용 이후에도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결과가 증명하는 셈입니다.
고령화 문제는 단순히 복지의 영역이 아닙니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초과) 진입을 앞두고 있으며(출처: 통계청),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국가 경쟁력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서 생산가능인구란 만 15세에서 64세 사이의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를 뜻하며, 이 비율이 줄어들수록 사회 전체의 부양 부담이 커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60대 어르신이 앱으로 서점 일을 신청하고, 오전 세 시간 일하고 오후에 커피 한 잔 즐기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은 '가난한 노인'의 풍경이 아닙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리듬 안에서 여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저도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엄마는 70세가 되어도 현장을 누비는 전문가로 있을 거야"라고. 그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으려면, 지금부터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나이를 이유로 사람을 재단하는 노동 문화는 이제 바꿔야 할 시점입니다. 스키마바이트와 스팟워크가 보여주듯, 짧은 시간도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잡 포스팅 시스템처럼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구조는 시니어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경력단절자 모두에게 열린 시장을 만듭니다. 멀리 내다보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 그것이 초고령 사회를 살아갈 우리 모두의 가장 현명한 전략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 주변의 고용 구조를 다시 들여다볼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