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의투자 스터디에서 반도체 ETF를 분석하다 보면, 팀원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를 때가 있습니다. AI 관련 종목이 또 올랐다는 소식에 분위기가 들뜨다가도, 누군가 "근데 지금 시장이 너무 고평가 된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잠시 침묵이 흐르는 그 분위기. 저도 그 질문 앞에서 매번 멈칫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주가가 오르면 경제가 좋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두 가지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게 점점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CAPE 지수 36, 역사가 보내는 경고음
주식 시장이 과열되었는지 판단하는 대표적인 잣대 중 하나가 CAPE 지수입니다. CAPE 지수란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yclically Adjusted Price-to-Earnings Ratio)의 약자로, 단순히 현재 주가를 최근 1년 이익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물가 변동을 반영한 10년 치 평균 이익을 기준으로 주가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지금 주가가 기업이 실제로 버는 돈에 비해 얼마나 비싸게 팔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입니다.ㅁ
현재 이 수치는 36입니다. 역사적 평균이 18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확히 두 배입니다. 솔직히 이 숫자를 처음 확인했을 때 저도 꽤 놀랐습니다. 단순히 "좀 비싸다" 수준이 아니라, 닷컴 버블 직전과 비슷한 영역에 걸쳐 있는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개발한 이 지표는 월가의 낙관론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줍니다(출처: 예일대 실러 연구소).
일반적으로 시장이 과열되었다고 해도 당장 조정이 오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CAPE 지수가 높을 때 들어간 포지션은 항상 회수 기간이 길거나, 예상보다 훨씬 큰 변동성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스터디에서 반도체 ETF를 분석할 때도 이 수치를 먼저 확인하고 나면, 단기 추세보다 훨씬 신중하게 접근하게 됩니다.
현재 시장의 고평가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은 AI 유포리아입니다. 메타,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상위 4개 빅테크 기업만 올해 AI 인프라 구축에 약 7,000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국가 예산에 버금가는 규모입니다. 문제는 전체 주식 시장 가치의 87%를 상위 10%가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데이터에 따르면, 하위 50% 계층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전체의 1%에 불과합니다(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시장이 오른다는 뉴스가 모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제가 스터디를 하면서 가장 크게 체감하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현재 시장 상황을 냉정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CAPE 지수 36: 역사적 평균(18)의 두 배로, 시장 고평가 상태
- 빅테크 4사 AI 투자 규모: 연간 약 7,000억 달러
- 상위 10%의 주식 보유 비중: 전체 시장 가치의 87%
- 하위 50%의 주식 보유 비중: 전체의 1%
채용 침체와 K자형 경제, 숫자 뒤에 가려진 민낯
실업률이 4.3%라는 숫자를 보면 고용 시장이 나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최근 인정한 것처럼, 실제 신규 채용 증가율은 사실상 0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동시에 가능한 걸까요.
답은 노동 공급 자체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와 이민 유입 감소가 겹치면서, 구직자 수도 함께 줄어든 겁니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 낮은 손익분기점(low break-even rate)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손익분기점이란 실업률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신규 채용 규모를 뜻합니다. 공급이 줄면 수요가 줄어도 균형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입니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완충 장치가 사라진 상태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취약합니다.
채용이 멈춘 이유도 예상과 조금 다릅니다. AI가 당장 사람의 일을 빼앗아서가 아닙니다. 기업들이 AI 인프라에 막대한 예산을 배정하면서, 사람을 뽑는 데 쓸 돈이 줄어든 구조적 결과입니다. 이른바 '채용 침체(hiring recession)'로, 의료 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30여 명의 직원을 관리하는 조직 운영자 입장에서 이 말이 특히 와닿습니다. 기술 도구에 예산을 쓰고 나면, 정작 사람에게 투자할 여력이 줄어드는 현실은 제가 직접 겪어봐서 압니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K자형 경제입니다. K자형 경제란 경제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만 집중되고 나머지 계층은 오히려 뒤처지는 양극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같은 시간이 흘러도 위로 올라가는 사람과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이 점점 갈리는 'K'자 모양의 경제입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연봉 15만 달러 이상의 상위 20%가 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반면, 하위 80%의 실질 소비는 2019년보다 오히려 줄어든 상태입니다. 미국 GDP의 70%가 민간 소비에서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위 계층의 소비 심리가 꺾이는 순간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유럽이 K자형 경제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덜 취약한 이유는 사회 안전망의 차이 때문입니다. 유럽의 GDP 대비 민간 소비 비중은 약 52%로 미국보다 낮고, 그만큼 소비 양극화에 대한 충격 흡수력이 큽니다. 반면 미국은 소수의 소비가 경제 전체를 지탱하는 구조에 더욱 의존하고 있습니다.
모의투자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듭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이들이 사회에 나올 시점에 이 K자형 구조가 더 심화되어 있다면, 진입 장벽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 있을 겁니다. 지금 재테크 공부를 치열하게 하는 이유가 단순히 수익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지금 시장은 AI 유포리아가 만들어낸 환상 위에 서 있고, 그 혜택은 극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CAPE 지수가 경고를 보내고 있고, 채용 시장은 조용히 얼어붙고 있으며, K자형 구조는 점점 굳어지고 있습니다. 주가 상승이 경제 전반의 건강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숫자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보이는 불편한 현실입니다. 지금 당장 포트폴리오를 점검하면서 CAPE 지수와 같은 밸류에이션 지표를 함께 보는 습관을 들여두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