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애플의 역사를 '제품 출시의 연속'으로만 봤습니다. 아이폰이 나왔고, 맥북이 얇아졌고, 이어폰 구멍이 사라졌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창립 50주년을 맞아 다시 들여다보니, 이건 그냥 기술사가 아니라 실패와 복수와 인내가 뒤얽힌 사람 이야기더라고요. 그리고 그 흐름이 제 삶의 어느 지점과 정확히 겹치고 있었습니다.
잡스의 귀환: 쫓겨났기에 더 강해진 사람
애플의 창립일이 4월 1일 만우절이라는 사실을 저는 꽤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장난기 넘치던 창업자들이 의도적으로 고른 날짜라고 하는데, 이 회사의 역사 자체가 농담 같은 반전으로 가득 찬 걸 보면 납득이 됩니다.
1985년에 스티브 잡스가 자기 손으로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애플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당시 잡스는 애플 2의 성공으로 30대도 되기 전에 벼락부자가 된 상태였고, 자만심이 조직 전체를 위협할 수준이었습니다. 리사(Lisa) 프로젝트에서 퇴출당하자 같은 회사 안에서 맥킨토시 팀을 따로 꾸려 경쟁을 붙여버린 일화는 지금 들어도 황당합니다. 당시 CEO 존 스컬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겠지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스컬리를 애플로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잡스 본인이었고요.
그런데 이 축출이 결과적으로 애플을 구한 씨앗이 됩니다. 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워크스테이션 기업을 차리고, 루카스 필름 산하의 작은 3D 그래픽 회사를 인수합니다. 그게 지금의 픽사(Pixar)입니다. 픽사에서 잡스는 처음으로 '내가 고용한 사람들의 능력을 믿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팀원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과를 기다리는 것, 그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고요.
1997년, 파산 직전이던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하며 잡스를 다시 데려옵니다. 당시 애플이 운용 가능한 현금이 불과 91일 차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잡스가 넥스트에서 만든 운영체제 넥스트스텝(NeXTSTEP)은 이후 맥 OS X의 기반이 됩니다. 여기서 넥스트스텝이란,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Object-Oriented Programming) 방식을 기반으로 한 운영체제로, 현대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의 뿌리가 된 시스템입니다. 쉽게 말해 지금 아이폰 앱을 개발할 때 쓰는 NS로 시작하는 API들, 예를 들어 NSObject, NSString 같은 것들이 전부 이 넥스트스텝의 흔적입니다. 한 번 쫓겨난 창업자가 만든 운영체제가 2025년 현재까지도 애플 생태계 전체의 소프트웨어 뼈대로 살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묘합니다.
혁신 설계: 아이튠즈부터 에어팟까지, 시장을 바꾼 결정들
2003년 아이튠즈 스토어(iTunes Store)의 등장은 단순한 음악 판매 서비스가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냅스터나 소리바다 같은 불법 음원 다운로드 플랫폼이 만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잡스는 사람들이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공짜라서가 아니라, 원하는 곡 한 곡만 합법적으로 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제가 당시 MP3 플레이어를 쓰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 분석이 정확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음반 산업은 앨범 단위 판매를 고집했지만, 잡스는 곡 단위 구매를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이 결정은 음악 시장의 구조를 바꿔놓습니다. 싱글 발매와 미니 앨범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 아이튠즈 스토어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애플이 도입한 플랫폼 수수료 30%는 이후 앱스토어(App Store)의 기준이 됩니다. 플랫폼 수수료란, 플랫폼이 거래를 중개하는 대가로 판매자에게 부과하는 수익 배분 구조를 말합니다. 오늘날 애플의 전체 매출 중 서비스 부문이 약 25%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구조의 출발점이 바로 2003년의 아이튠즈 스토어였습니다.
2016년 아이폰 7에서 이어폰 단자가 사라진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도 "진짜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매일 19층 계단을 오를 때 에어팟(AirPods) 없는 상황을 상상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아이폰 7 출시 당시 함께 공개된 에어팟은 이후 완전 무선 이어폰 시장 자체를 만들어냈고, 삼성을 포함한 경쟁사 스마트폰에서도 이어폰 단자가 사라지는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애플의 혁신 결정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단기적으로는 비난받지만, 3~5년 후 업계 표준이 됩니다
- 기존 시장 관행을 부정하고 사용자 불편에서 새 수요를 찾습니다
- 하드웨어 변화 하나가 반드시 서비스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이 패턴은 투자 분석 측면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재테크팀에서 애플의 사업 구조를 분석할 때, 잡스 시절부터 이어진 이 패턴이 지금까지 얼마나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리콘 설계: 수십 년 선택의 종착점
2020년 애플 실리콘(Apple Silicon)으로의 전환은 제게 가장 개인적인 기억과 맞닿아 있습니다. 코로나 초기, 발등뼈가 부러져 열흘 넘게 출근을 못 하던 시기에 리뷰용으로 받아둔 M1 맥북 에어만 들고 일해야 했습니다. 당시 인텔 맥북 풀 옵션을 쓰던 터라 솔직히 '이걸로 업무가 되겠나' 싶었는데, 쓰다 보니 생각보다 너무 잘 굴러가는 겁니다. 그때 제가 통합 메모리(Unified Memory) 아키텍처의 효율을 직접 몸으로 느꼈습니다.
여기서 통합 메모리 아키텍처란, CPU와 GPU가 같은 메모리 풀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이동 없이 처리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두 처리장치가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느라 낭비하는 시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30명 직원 데이터와 방대한 행정 자료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저한테는 이게 '시간을 돌려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애플 실리콘이 단순한 기술 도약이 아니라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2005년 애플이 파워 PC(PowerPC) 아키텍처에서 인텔(Intel) 아키텍처로 이전했을 때와 정확히 같은 이유, 즉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 한계 때문에 2019년 다시 인텔에서 자체 설계 칩으로 갈아탄 겁니다. 전성비(電性比)란 소비하는 전력 대비 얼마나 높은 성능을 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특히 배터리로 구동하는 노바일 기기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 기준입니다.
이 결정에는 2006년의 인텔 협상 결렬도 영향을 줬습니다. 아이폰 개발 초기, 잡스는 인텔 칩을 탑재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인텔 CEO 폴 오텔리니는 수익성 계산이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고, 당시 아이폰이 얼마나 팔릴지 몰랐다고 훗날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거절이 계기가 되어 애플은 삼성을 통해 ARM(Advanced RISC Machines) 아키텍처 기반 칩을 개발하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자체 칩 설계 역량을 키워나갑니다. 여기서 ARM 아키텍처란, 저전력 설계에 최적화된 명령어 집합 구조(ISA)로, 현재 대부분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칩에 사용되는 설계 방식입니다.
시가총액 4조 달러에 육박하는 애플의 지금 위치는 한 번의 천재적 결정이 만든 게 아닙니다. 1985년의 실패, 1997년의 귀환, 2003년의 플랫폼 실험, 2006년의 굴욕이 전부 연결되어 있습니다(출처: Apple Newsroom).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에 따르면, 애플의 서비스 사업 부문은 하드웨어 사업 대비 마진율이 두 배 이상 높으며, 이것이 현재 애플의 기업 가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인으로 분석됩니다(출처: Moody's).
50년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나서, 저는 애플의 행보를 'BTS' 투자팀에서 분석할 때 단기 실적보다 생태계 구조를 먼저 보게 됐습니다. 기업의 경제적 해자(Moat), 즉 경쟁사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진입 장벽이 어디에 있는지가 핵심이고, 애플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 칩 설계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며 그 해자를 해마다 깊게 팠습니다. 물론 앱스토어 수수료를 둘러싼 각국의 규제 리스크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변수입니다. 잡스가 "평생 설탕물이나 팔 거냐"라고 스컬리에게 물었던 질문은, 저한테도 늘 이렇게 바뀌어 들립니다. 지금 하는 이 일이 10년 후의 구조를 짜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오늘만 버티고 있는 건지.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