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뉴스에서 볼 때마다 막연하게 '경기가 안 좋다는 얘기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센터에서 수입 교구재 견적을 받다가 3개월 전과 단가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을 확인한 순간, 이게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피부로 느꼈습니다. 중동 분쟁이 길어지면서 유가가 출렁이고, 그 파동이 수입 물가와 환율을 타고 제 일상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오일쇼크의 재현인가, 다른 시대의 다른 공포인가
일반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은 '70년대의 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1979년 2차 오일쇼크 당시 미국의 물가는 두 자릿수로 치솟으면서 성장률은 마이너스까지 추락했습니다. 당시에는 석유가 사실상 유일한 주요 에너지원이었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 폭등이 경제 전체를 직격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풍력, 원자력, 천연가스 등 대체 에너지원이 다양해졌고, AI 데이터센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전력 인프라 투자도 활발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합니다. 석유 의존도는 줄었을지 모르지만, 에너지 전체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AI 연산 하나하나가 전기를 소모하는 시대이니까요.
WTI(서부 텍사스산 원유) 기준 유가를 보면, 2026년 1월 기준 약 56달러였던 가격이 불과 몇 달 만에 100달러를 넘어섰다가 지금은 90달러 선에서 형성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WTI란 미국 원유 시장의 기준이 되는 유종으로, 글로벌 원유 가격의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예전 대비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경제가 가스 가격 상승에 초토화됐던 전례와 정확히 겹쳐 보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중앙은행이 어느 방향으로도 금리를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두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면 어느 쪽 처방도 부작용을 동반합니다.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전쟁 장기화로 물가가 오를 경우 통화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언급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출처: 한국은행).
원·엔 동조화와 추경의 역설, 환율이 알려주는 것
제가 투자 포트폴리오를 점검할 때 요즘 가장 신경 쓰는 지표가 달러-원 환율과 달러-엔 환율의 상관관계입니다. 두 통화가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 이른바 동조화(Correlation)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동조화란 서로 다른 두 자산이나 지표가 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경향을 말하는데, 한국과 일본이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 배경에는 각각 3,500억 달러(한국)와 5,500억 달러(일본)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이 깔려 있습니다. 결국 그 돈이 미국으로 흘러가야 하는 구조적 압력이 원화와 엔화 모두에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반면 위안화는 오히려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어, 세 통화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묘한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환율에 영향을 주는 주요 변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요·공급과 통화량 등 전통적 거시경제 변수
- 연준(Fed) 기준 금리 결정과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리스크
-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과 SNS 메시지
- 한·일의 대미 투자 약정에 따른 달러 유출 구조
- 중동 분쟁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심리
추경 논의도 이 맥락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추경은 민생을 살리는 재정 정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한 면만 보는 시각입니다. 한국의 M2(광의통화량)는 올해 1월 기준 약 4,565조 원 수준으로 이미 유동성이 상당히 풀려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M2란 현금과 요구불예금에 더해 만기 2년 미만의 정기예금·적금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통화량 지표로, 시중에 얼마나 많은 돈이 돌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원화 유동성이 넘치는 상황에서 추경으로 돈을 더 풀면, 환율 상승 압력을 자극하고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CPI(소비자물가지수)가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소상공인 입장에서 이 문제는 더 절박합니다. 대기업은 환율 헤지(위험회피) 수단을 활용할 수 있지만, 수입 원자재를 쓰는 소규모 사업자는 1,500원대 환율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합니다. 센터에서 수입 교구재를 발주할 때마다 이 현실을 직접 확인하고 있습니다.
AI 혁명과 채권 시장, 공포 속에서 기회를 찾는 법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극에 달할 때, 역발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 말을 그냥 위로 섞인 말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IMF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2.3%로 상향 전망했다는 소식을 보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출처: IMF). 인플레이션이 주식 시장에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AI가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려 경기 둔화를 상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완전히 허구만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AI 혁명이 노동 구조를 바꾸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게 작용합니다. 노동력이 부족한 한국과 일본에게는 AI가 성장 동력이 되지만,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에서는 오히려 도입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변수가 됩니다. 심리 상담 현장을 운영하면서도 반복 업무의 자동화 가능성을 고민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술 투자 관점에서 기술주를 바라볼 때 이 구조적 차이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채권 시장에서는 또 다른 신호가 잡힙니다. SRF(스탠딩 레포 퍼실리티)는 시중 은행이 단기 자금이 부족할 때 중앙은행에서 긴급하게 빌리는 창구입니다. 여기서 SRF 잔액이 늘어나면 시중 단기 자금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경고 신호인데, 최근에는 오히려 이 잔액이 줄고 반대로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는 영대포 규모가 늘었습니다. 위험 자산에서 안전 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이 역설적으로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의 불안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는 효과를 냈습니다. 사모신용이란 은행이 아닌 사모펀드 등 민간 기관이 기업에 직접 대출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공개 시장보다 유동성이 낮아 위기 때 충격이 크게 전달되는 구조입니다.
또한 WGBI(세계국채지수) 편입으로 한국 국채에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변수입니다. 여기서 WGBI란 글로벌 주요 채권을 편입하는 대표적인 채권 지수로, 편입되면 전 세계 기관 투자자의 자동 매수 수요가 발생합니다. 올해 연간 50조 원 규모의 외국인 국채 매수가 기대되는 가운데, 10년 만기 국고채 구간이 예상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신호입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저는 하루치 뉴스보다 구조적 흐름을 더 믿게 됩니다. 매일 계단을 오르듯 한 걸음씩 쌓아온 공부가 막연한 공포를 걸러내는 필터가 되어준다는 것을 재테크 팀원들과 함께 확인하고 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상황이 현실화되더라도, AI 생산성 혁명과 실적 중심의 선별적 투자 원칙은 유효합니다. 지금은 거시 공포에 매몰되기보다 개별 자산의 안전 마진을 한 칸씩 높여나갈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전문가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