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꽤 오랫동안 대출 규제가 집값을 잡아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재테크 카페를 들락거리다 보면 "이번엔 진짜 꺾이겠지"라는 말이 매번 나오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어땠나요? 규제는 강해졌고, 강남 아파트는 오히려 더 올랐습니다. 일하면서 가계 재정을 직접 관리해 온 저에게, 이 구조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시장 실패가 아니라 게임 자체가 바뀐 신호로 읽힙니다.
자산 계층화, 이미 숫자로 증명되고 있었다
혹시 서울 강남 30대 아파트 구매자들의 자금 조달 구조를 실제로 들여다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2024년 기준 강남권 30대 매수자의 경우, 증여와 가족 간 차입이 자금 조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년 만에 12.4%에서 22.6%로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여기서 가족 간 차입이란 부모 등 가족에게 돈을 빌리는 방식인데, 연간 이자 금액이 1천만 원을 넘지 않으면 사실상 무이자로 빌려도 세법상 문제가 없습니다. 결혼·출산 증여 공제 확대(양가 합산 최대 3억 원)와 이 무이자 차입을 합치면 단번에 7억 원 이상을 부모로부터 끌어올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그 결과 강남 30대 평균 매수 금액은 약 14억 5천만 원인데, 이 중 증여·차입으로 3억, 예금으로 2.2억, 주식·채권 매각으로 1.8억, 합산 약 7억을 스스로 마련합니다. 대출 비중은 15.8%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경인 지역 30대는 증여 금액이 8천만 원, 예금이 1.3억에 그치고, 담보 대출이 3.2억으로 자금 조달의 핵심을 차지합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란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모든 대출의 원리금이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하는데, 이 DSR 규제는 대출 의존도가 높은 경인 지역 가계에는 직격탄인 반면, 현금과 증여로 무장한 강남 매수자에게는 애초에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제가 직접 대출 한도를 계산해 보면서 느낀 건 이겁니다. 규제는 이미 규제가 필요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
자산 계층화(wealth stratification), 즉 부의 출발선 자체가 세대 내에서 갈리는 현상은 수치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부동산원).
조기 증여가 새로운 하방 지지선이 된 이유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 부모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걸까요?
상속세와 증여세의 세율 구조를 보면 힌트가 있습니다. 상속세란 사망 후 재산을 물려줄 때 부과되는 세금으로, 세율이 최고 50%에 달합니다. 증여세 역시 명목 세율은 같지만, 증여를 분산하면 적용 세율 구간이 낮아집니다. 10년 단위로 끊어 조기에 나눠 주면 같은 재산을 넘기더라도 실효 세율이 훨씬 낮아지는 것입니다.
60~70대 부모 세대는 2020년대 들어 강남 자산이 큰 폭으로 불어난 세대입니다. 30억이던 자산이 50억, 100억이 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자산을 상송으로 한꺼번에 넘기면 세금이 40~50%나 빠져나갑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조기 증여를 체계적으로 설계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되는 거죠.
더 중요한 건 이 흐름이 정부의 규제 설계 자체를 무력화한다는 점입니다. 대출 한도를 죄어도, 현금으로 해결하면 그만입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매물을 강제하려 해도, 증여로 전환하면 매물이 시장에서 사라집니다. 실제로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이후 강남 매물이 일시 증가했다가 빠르게 소멸한 것은, 다주택자들이 시장에 팔지 않고 증여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퇴근길 19층 계단을 오르면서 이 구조를 계속 곱씹습니다. 불공평하다는 감정은 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유산 소득(inherited income), 즉 부모로부터 무상 또는 저렴한 조건으로 이전받는 자산에 박탈감만 느끼고 있으면 제 가계 전략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변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이게 제가 숫자를 들여다보며 내린 결론입니다.
공급 해법, 왜 아무도 제대로 안 하는 걸까
정부가 고가 아파트를 사치재로 규정하고 보유세 및 양도세 강화 쪽으로 기조를 전환하는 것은, 어느 정도 현실을 직시한 움직임이라고 봅니다. 보유세란 집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매년 부과되는 세금으로, 투자 수익률을 구조적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도 같은 맥락입니다. 장기보유특별공제란 오랫동안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에게 양도세 산출 시 일정 금액을 깎아주는 제도인데, 이를 줄이면 장기 보유의 세제 혜택이 줄어들면서 매물 출회 유인이 생깁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지점이 있습니다. 세금 규제로 강남 집값을 잡은 사례가 글로벌하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보유세가 1~2%에 달하는 미국조차 집값은 꾸준히 오릅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 세금은 단기 가격 억제 수단일 뿐 구조적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공급 해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다음 세 가지가 동시에 움직여야 합니다.
- 노원·도봉·중계·상계 등 구축 밀집 지역의 재건축 사업성 확보 — 교통·인프라 문제를 정부 재정으로 일부 해결해 사업성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 비아파트 공급 생태계 복원 — 소형 건설사와 신탁사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특정 사업의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 기능이 무너져 있어 도시형생활주택·다세대주택 공급이 막혀 있습니다.
- 다주택자 규제와 비아파트 공급의 충돌 해소 — 비아파트를 공급하려면 임대 목적 다주택자가 필요한데, 다주택자를 옥죄면 공급이 줄어드는 역설을 풀어야 합니다.
1990년대 200만 호 건설 당시 대출 규제도, 보유세도 없었지만 집값이 10년간 안정됐다는 사실은 결국 공급의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저는 강남 아파트 지수가 오를 때마다 분노하기보다, 서민이 살 수 있는 비아파트 월세 시세에 더 예민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짜 주거 안정 문제니까요.
정리하면, 지금의 부동산 구조는 규제 만능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시장으로 이미 전환됐습니다. 조기 증여와 가족 간 차입이 강남의 새로운 하방 지지선을 만들고 있고, 대출 규제는 오히려 서민 자녀의 자산 형성 시기만 늦추고 있습니다. 저처럼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기권 가계라면 정책 서사에 흔들리지 않고, 가계의 실질 청산 가치를 직접 계산하고 지키는 전략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세무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