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안에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저는 센터 부원장을 맡고 나서야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골드만삭스 전 CEO가 직접 밝힌 월가 정점까지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제가 매일 겪는 조직 현실의 압축판처럼 느껴졌습니다. 에고를 내려놓고 사람을 연결하는 능력이 결국 조직에서의 생존을 결정한다는 것, 그리고 그 생존은 숫자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
핫도그 소년이 월가 정점에 선 이유: 파트너십 문화의 실체
공중파에서 스펙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저는 조금 지루해집니다. 직접 겪어보니,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가장 스펙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연결을 잘 만드는 사람이더라고요.
골드만삭스는 1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파트너십(Partnership) 구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여기서 파트너십이란 단순히 직함이 아니라 구성원이 회사의 공동 소유자로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전체 성과에 책임을 지는 오너십(Ownership) 문화를 의미합니다. CEO가 지시하면 아래가 따르는 수직적 위계가 아니라, 시니어 파트너들이 함께 토론하고 결정을 소셜라이즈(Socialize)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소셜라이즈란 의사결정 전 관련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저도 지금 매일 이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인 센터에서 한 사람의 결정이 전체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반대로 한 사람의 반발이 사업 전체를 멈춰 세우기도 합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는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에고(Ego)의 충돌은 일상입니다. 에고란 자아 중심적 자존감을 의미하는데, 전문가 집단일수록 이게 특히 강하게 작동합니다.
결국 그 전 CEO가 말한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최고의 트레이더도, 최고의 뱅커도 아니었지만,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끄는 일에서만큼은 탁월했다는 것. 저는 그 말이 성공한 사람의 겸손이 아니라 정말 솔직한 고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트너십 문화가 위기에 더 강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구성원이 "내 자리"가 아니라 "회사 전체"를 걱정하기 때문에 위기 때 이탈이 적습니다.
- 오너십 감각이 강한 사람은 문제를 발견하면 덮지 않고 먼저 꺼냅니다.
- 퇴사 후에도 강한 동문 네트워크가 유지되어 장기적 영향력이 축적됩니다.
6번의 위기를 통과하며 깨달은 리스크관리의 진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GFC, Global Financial Crisis) 당시 리먼 브라더스와 베어스턴스, 메릴린치는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손실을 내지 않은 극히 드문 기관 중 하나였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거대한 리스크 포지션을 보유하면서도 헤지(Hedge)를 체계적으로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헤지란 반대 방향의 포지션을 동시에 보유해 손실 가능성을 제한하는 위험 분산 전략을 의미합니다.
1987년 블랙먼데이부터 1994년 유럽 금리 쇼크,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붕괴, 아시아 외환위기, 그리고 닷컴 버블까지. 제가 밤마다 재테크 카페에서 시장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공부할 때, 이 위기들이 단순히 '옛날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사이클(Cycle)이 반복된다는 것, 다만 그 형태가 달라질 뿐이라는 것.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맞춘다는 말처럼, 패턴을 읽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갈립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위기를 살아남은 이후에 더 큰 위기가 왔다는 점입니다. 금융위기에서 손실을 피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중의 분노 대상이 되었고, 골드만삭스는 극심한 평판 위기(Reputational Crisis)에 직면했습니다. 평판 위기란 기업의 재무적 실적이 아니라 대중과 이해관계자들의 신뢰가 무너지는 위기를 의미합니다.
그전 CEO는 이 점에 대해 냉정하게 인정했습니다. 대중과 소통하지 않았던 것, 소매금융 고객이 없어 일반 시민과 접점이 없었던 구조적 문제, 이것이 결국 정치적 표적이 되었다는 것. 저는 이것이 단순한 PR 실패가 아니라 리스크관리의 맹점이었다고 봅니다. 숫자로 측정 가능한 시장 리스크만 관리하고, 측정하기 어려운 사회적 리스크는 방치한 것입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바젤 III 규제 프레임워크도 2010년 이후 운영 리스크와 평판 리스크를 시스템 리스크 산정에 포함시키기 시작했습니다(출처: 국제결제은행). 이는 숫자 밖의 리스크를 제도권이 공식 인정한 전환점이었습니다.
AI 시대에도 살아남는 인간의 조건: 회복탄력성과 넓은 안목
요즘 주변에서 "AI 시대니까 기술 하나에 올인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논리가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밤마다 시장 트렌드를 공부하다 보면, 기술 하나만 파는 사람이 가장 먼저 대체된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하이퍼 스피드 알고리즘 트레이딩(High-Frequency Algorithmic Trading) 환경에서는 1분에 수천 건의 거래가 자동으로 처리됩니다. 여기서 알고리즘 트레이딩이란 사람의 개입 없이 프로그래밍된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매매가 실행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AI가 이 판단 영역까지 확장되면, 오류를 감지하는 사람이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천문학적인 청산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팀원들과 함께 반드시 정량적 손절 기준, 즉 기계적 탈출선을 미리 설정하는 이유입니다.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즉 인문·사회·자연을 아우르는 폭넓은 교양 교육이 왜 중요한지도 이 맥락에서 다시 읽힙니다.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지, 어떤 기술이 AI에 대체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패턴을 읽고, 사람의 감정과 집단 심리를 이해하고, 낯선 상황에서 유연하게 반응하는 능력은 알고리즘이 아직 복제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23년 미래 직업 역량 보고서에서 적응력과 비판적 사고를 핵심 인적자본(Human Capital)으로 꼽았습니다(출처: OECD).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기술보다 더 희귀한 역량은 '이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상대방에게 심어주는 능력입니다. 19층 계단을 매일 오르는 건 단순히 운동이 아니라, 빠른 엘리베이터 대신 정직하게 한 계단씩 밟는 선택입니다. 단기 보상보다 장기 신뢰를 쌓는 방식이 결국 플랫폼을 만들고, 그 플랫폼이 개인의 영향력으로 전환됩니다.
결국 이 이야기의 핵심은 '누가 더 똑똑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버티며 신뢰를 쌓았는가'로 귀결됩니다. 저는 여기서 위안보다는 검증 가능한 기준을 가져가려 합니다. 협업의 서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시장의 알고리즘은 감동받지 않습니다. 회복탄력성은 정신력만이 아니라 냉정한 수치로 세운 손절 기준과 함께할 때 비로소 실전에서 작동합니다. 커리어와 투자 모두, 낭만적 서사와 차가운 숫자 사이의 균형이 진짜 생존 레일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