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가의 정점에 오른 사람이 "저는 가장 뛰어난 투자자도, 트레이더도, 세일즈맨도 아니었습니다"라고 먼저 꺼낼 줄은 몰랐습니다. 전 골드만삭스 회장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회고록 인터뷰에서 꺼낸 말인데, 제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과 너무 닮아 있어서 멈추게 되더군요. 조직에서 살아남는 건 스펙이 아니라 협업 능력과 회복탄력성이라는 이야기, 지금부터 제 경험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협업, 가장 잘난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 팀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저는 내심 "내가 제일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회의 때마다 먼저 말하고, 내 안을 관철시키려 애썼고, 그게 리더십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 방식은 팀을 이기는 게 아니라 조용히 고립되는 길이었습니다.
블랭크페인이 스스로를 묘사한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서로 자연스럽게 협력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데 탁월했다"고 했습니다. 파트너십(Partnership) 문화, 즉 공동 소유 의식을 가진 조직에서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사회화(Socialization)'하는 과정이 선행됩니다. 여기서 파트너십 문화란, 구성원이 단순한 피고용인이 아니라 조직의 공동 오너처럼 전체의 성과에 책임감을 갖는 구조를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 직장에서 "조직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이 때로는 헌신만 강요하고 보상은 없는 구조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구분했습니다. '자기 에고(Ego)를 내려놓는 것'과 '자기 몫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에고를 낮추면 팀이 움직이고, 그 팀의 성과가 결국 내 플랫폼이 됩니다. 골드만삭스가 130년 이상 파트너십 체제를 유지하며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은 배경엔 이 집단적 오너십 의식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와 베어스턴스(Bear Stearns), 메릴린치(Merrill Lynch)가 사실상 소멸하는 상황에서도 골드만삭스는 손실 없이 버텨냈습니다. 헤지(Hedge) 전략, 즉 위험 자산에서 발생할 손실을 상쇄하는 반대 포지션을 미리 구축한 리스크 관리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한 건 특출한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대응한 파트너십 문화였습니다. 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 에고를 낮추는 것은 실력을 숨기는 게 아니라 팀이 움직이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 파트너십 문화에서는 결정을 '사회화'하는 과정이 곧 안정성의 원천입니다
- 헤지 전략처럼, 조직 내 인간관계도 위기 전에 미리 구축해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 조직을 위한 희생과 자기 권리 보호는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요약: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가장 뛰어난 개인이 아니라, 에고를 내려놓고 협업을 이끌어내는 사람입니다.
좁은 우물보다 넓은 안목이 위기에 강합니다
제가 이십대 후반에 한창 커리어를 쌓을 때, 주변에서는 "빨리 한 분야를 파야 한다", "기술 스택을 더 쌓아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따라 특정 도구와 방법론에만 집중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느낀 건 오히려 시야가 좁아지면서 문제를 풀 때 경직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블랭크페인은 이 부분에서 꽤 강하게 말했습니다. "초반에 지나치게 한 가지에 집중하는 건 실수"라고요. 그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교육, 즉 문학, 역사, 철학 같은 인문·교양 교육이 단순한 소양이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유리하다고 봤습니다. 여기서 리버럴 아츠란 특정 직무 기술이 아닌, 인간과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폭넓은 교육 체계를 뜻합니다. 역사를 알면 "지금이 전례 없는 위기"라는 공포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사이클은 반복되고, 다만 그 형태가 다를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조직에서 위기가 왔을 때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양한 맥락을 읽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수치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수치가 나온 배경과 사람들의 심리를 함께 읽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연결됩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실패하거나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힘인데, 이건 단순한 멘털 강함이 아니라 "이런 상황은 전에도 있었고 결국 지나갔다"는 역사적 맥락 인식에서 나옵니다.
AI가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초당 수천 건의 거래를 처리하는 오늘날, 한 줄의 오류가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 이런 레버리지(Leverage) 구조, 즉 작은 힘이 증폭되어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구조에서는 기술적 전문성만큼이나 판단력과 맥락 독해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블랭크페인이 "AI가 진화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흥미로운 사람이어야 살아남는다"고 한 말이 유독 와닿았습니다. 출처: OECD Employment Outlook 2023
물론 당장 월세와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서 "교양을 쌓으라"는 말은 다소 유토피아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저도 그 간극을 느낍니다. 핵심은 '넓어지는 것'이 장기적 생존에 유리하다는 방향 감각을 갖되, 당장의 실무 경쟁력을 포기하지 않는 균형일 것입니다.
요약: 좁은 기술에 갇히는 것보다 역사와 맥락을 읽는 넓은 안목이 위기 앞에서 더 강한 회복탄력성을 만들어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직장 초반에 연봉보다 성장에 집중하라는 말,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인가요?
A. 방향은 맞지만 전제가 중요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조언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조직이 성장에 실제로 투자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헌신만 요구하고 보상 구조가 없는 곳에서 희생만 하다가는 소진될 뿐입니다. 성장에 집중하되, 내 커리어 안전마진도 함께 챙기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Q. 협업 능력은 타고나는 건가요, 아니면 훈련이 가능한가요?
A. 제 경험상 이건 훈련이 가능한 영역입니다. 블랭크페인 본인도 핫도그를 팔고 우편 분류원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조직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협업은 타고난 성격보다는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에서 출발합니다. 그 습관은 의식적으로 쌓을 수 있습니다.
Q. 리버럴 아츠 교육이 취업이나 실무에 실제로 도움이 되나요?
A. 단기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써봤는데, 역사나 철학을 조금 알면 복잡한 조직 문제를 볼 때 시야가 확실히 달라집니다. "이런 일이 또 왔네" 하고 패턴을 인식하는 순간, 공황이 줄어들고 판단이 빨라집니다. 그게 쌓이면 분명한 경쟁력이 됩니다.
Q. 골드만삭스가 2008년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뭔가요?
A. 핵심은 헤지 전략이었습니다. 리스크를 크게 가져가면서도 반대 포지션을 미리 구축해 손실을 상쇄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나 메릴린치와 달리 손실 없이 위기를 통과했고, 이후 오히려 평판 위기를 더 크게 겪었습니다. 살아남는 것과 신뢰를 유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결론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한 가지를 먼저 물어봅니다. "이게 내 현실에 적용 가능한 이야기인가?" 이번엔 절반쯤 그렇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에고를 낮추고 협업을 이끌어내는 능력, 그리고 위기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회복탄력성은 골드만삭스가 아니어도 어디서든 통하는 원칙입니다. 반면 "초반엔 보상에 연연하지 말라"는 조언은 내가 속한 조직의 보상 구조를 먼저 냉정하게 따져보고 적용해야 합니다.
결국 제가 이 이야기에서 가져가는 건 하나입니다. 좁은 우물에 갇혀 단기 성과만 좇기보다, 넓게 배우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내 안전마진도 지켜나가는 것. 그게 지금 이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WxGEo4GDEk&t=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