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결국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될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 정반대였습니다. 기다릴수록 선택은 멀어지고, 뇌는 더 지쳐갔습니다. 두 아들을 키우며 일하는 워킹맘으로서, 하루하루가 결단의 연속인데 왜 저는 늘 멈춰서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손실 회피 편향이 결단을 막는다
삼성전자 주식을 손절하던 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장이 흔들리자 저는 하이닉스로 급하게 갈아탔고,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당시엔 단순히 판단이 틀렸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그 행동은 전형적인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손실 회피 편향이란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을 심리적으로 약 2배 더 크게 느끼는 인간의 본능을 말합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을 통해 실증한 개념으로, 이 편향이 작동하면 손실 확정을 피하려는 충동이 이성적 판단을 앞질러 버립니다.
주식에서만이 아닙니다. 이직을 3년째 고민하면서 현 직장의 장점을 떠올리는 순간 동시에 단점도 활성화되고, 둘이 충돌하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상태, 이것도 같은 구조입니다. 결국 손실을 피하려는 본능이 선택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행동재무학 연구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수익 실현 결정보다 손실 확정 결정을 평균 1.5~2배 더 오래 지연시킨다고 합니다(출처: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결단을 미룰수록 뇌의 백그라운드에서는 미해결 과제가 계속 돌아갑니다. 컴퓨터를 켜둔 채 화면만 껐을 때 전력이 계속 소모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매일 19층 계단을 오르며 몸의 근력은 쌓았지만, 정작 머릿속 인지 에너지는 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맥시마이저의 함정, 40%로 움직이는 용기
결정을 잘 못 내리는 사람을 흔히 우유부단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다르게 봅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 결정의 결과가 자신에게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맥시마이저(Maximizer)라고 불리는 유형이 이 함정에 자주 빠집니다. 맥시마이저란 주어진 모든 선택지 중에서 최대한 완벽한 선택을 하려는 사람을 말하며, 정보를 더 모을수록 오히려 결정이 어려워지는 역설을 겪습니다.
저도 모의투자 팀 'BTS' 팀원들과 하반기 포트폴리오를 짤 때 그랬습니다. 거시경제 지표, 섹터 분석, 개별 종목 리포트까지 끌어모았는데, 정보가 많아질수록 각 선택지의 장단점이 더 복잡하게 얽혀서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충동적 결론으로 흘렀던 적이 있습니다. 100%의 확신을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가장 나쁜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결단력 있는 선택을 위해 실질적으로 점검해볼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 선택을 했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인가
- 나의 핵심 가치 두 가지와 이 선택이 부합하는가
- 지금 느끼는 두려움이 실체가 있는 두려움인가, 아니면 머릿속에서 부풀려진 것인가
- 10년 후 혹은 80세에 돌아봤을 때 이 선택이 고개를 끄덕이게 할 것인가
제프 베이조스는 인생의 결정 대부분은 투웨이 도어(Two-way Door)라고 했습니다. 투웨이 도어란 들어갔다가 마음이 바뀌면 다시 나올 수 있는 문, 즉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을 뜻합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이 문 앞에서도 원웨이 도어라고 착각해 발을 못 뗍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 투자에서든 커리어에서든, 한 번 진입했다고 해서 영구히 묶이는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드뭅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캐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결정을 자꾸 미루면 이 효능감이 조금씩 깎입니다. "나는 또 못 했어"라는 경험이 쌓이면 반추 사고(Rumination)로 이어지는데, 반추 사고란 같은 걱정을 반복해서 되새기며 행동을 멈추는 사고 패턴을 말합니다. 40%의 확신만 있어도 일단 출발하고 이후에 조정하는 것이 심리학적으로도 훨씬 더 건강한 전략입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촉진 초점으로 핸들을 바꾸는 법
손실을 피하는 데만 에너지를 쏟으면 어떻게 될까요? 찬물을 끄면 따뜻한 물이 자동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찬물을 껐을 뿐, 따뜻한 물을 틀지 않았으니까요. 이것이 예방 초점(Prevention Focus)과 촉진 초점(Promotion Focus)의 차이입니다. 예방 초점이란 손실과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쓰는 심리적 지향을 말하고, 촉진 초점이란 원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에너지를 쓰는 방식을 말합니다.
저는 달러 자산과 금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검토할 때 오랫동안 예방 초점에만 머물렀습니다. "지금 들어가면 고점 아닐까", "이게 빠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면서 실제 진입은 미뤘습니다. 그 사이 자산의 가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에 조금씩 녹아내렸습니다. 위험을 피하는 것이 자산을 지키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방치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예방 초점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무모한 투기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예방 초점에만 과도하게 매몰되면, 성장을 향한 선택은 영원히 뒤로 미뤄집니다. 'BTS' 팀원들과 논의할 때도 이 균형이 핵심 화두였습니다. "나쁜 선택이 나쁜 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전제를 팀 내에서 먼저 합의하고 나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포트폴리오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되, 두려움이 핸들을 잡게 하지는 말자는 것, 이것이 결국 이 모든 고민의 결론이었습니다. 두려움은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은 제가 하는 것입니다.
결국 선택 자체보다 선택한 이후에 어떻게 조율해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지금은 꽤 확신합니다. 완벽한 선택을 기다리다 기회를 흘려보내는 것보다, 40%의 확신으로 출발해 그 과정을 100%로 만들어가는 편이 훨씬 더 실리적입니다. 실수나 실패를 자아 전체의 붕괴와 동일시하지 않는 단단함이 있어야 다음 선택도 가능합니다. 매일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결단력도 반복으로 쌓이는 근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